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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정동길

산림교육전문가 2015. 8. 31. 21:08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며 시내 고궁과 옛길을 걸어본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하는 경희궁은 조선 후기의 이궁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이라 부르고 그와 짝을 이루어 경희궁을 도성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궐이라고도 불렀는데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경희궁은 조선 후기 정치사의 중심 무대로서 1617년 (광해군9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6년여에 걸쳐 완성하였으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며 수난을 겪어 1910년 경성 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헐려나갔다. 

숭정전은 정전으로 국와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행사가 행하여진 곳으로 경종, 정조, 헌종의 세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자정문을 들어 서고 있는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전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서측회랑에서본 숭전전의 처마 선과 회랑의 기와 선

젊은 남녀는 궁을 볼아 계단에서 미래를 약속하고 이를 지켜 주려는 듯 함께한 카메라맨이 확인하여준다.

또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미래를 약속하러 올라오는듯하다.

옛 조선조 임금님들도 또한 지켜보는듯 하기도 하다.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2013-24) 둘레가 384cm, 수령 400년 된 느티나무

두 번째  白碑는 흥선대원군의 증손 이우(1912 ~ 1945)의 신도비로 비문이 없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망시 사회가 혼란하여 새기지 못한 듯하다고 한다.

네발과 발톱 그리고 사나운 이빨이 있는데 등은 비늘로 보이는 해태상인듯한 조각상에 새끼가 또한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경희공원의 입구  역사 박물관 이곳에 이르니 1980년대 초 현대그룹 인력개발원에서  내가 싫어하는 영어를 시험치른는곳 으로만  알았는데 왕궁의 자리였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되고 일본의 만행에 분노를 한다.

광복 뒤인 1946년에는 일본인 학교가 서울중·고등학교로 이어졌는데 1978년 5월 이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함에 따라 주식회사 현대가 이를 매입하여 연수원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5년 서울특별시에서 궁터를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

1988년에는 궁의 서쪽 구역에 있던 구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하다가 현재는 이 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궁궐 동쪽 구역에는 2002년 5월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1886년 5월 31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창설된 이화여자 고등학교

신아일보사 별관은 등록 문화재 402호로 1930년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축된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외벽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쌓았다. 1975년에 지상 4층으로 증축 되었다.

정동교회 교회당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의 교회당 건물로서 1895년 착공하여 1896년 12월 26일 헌당식을 베푼 바 있는 19세기 말의 건물이다.

정동극장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복원 이념 아래 1995년에 건립 주변의 다른 문화공간과 함께 도심 속의 새로운 문화 관광 명소다.

수령 550년의 보호수 회화나무와 맥문동

서울 시립 미술관입구의 "장미빛 인생" 의 조형물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덕수궁 돌담길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주거지였고 최근엔 대한민국의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다.

유명세와 기대 밖의 나에 정동길은 실망이다.

덕수궁과 시청 사이 대로변의 예쁜 화단은 가을을 알리고 있다.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에 이르렀다.

시청앞 광장의 이동식 화단

덕수궁 정문 앞에는 이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띈다.

시청 앞 광장에선 서울문화의 밤에 참가한 텐트족들이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고 무대에선 마술쇼가 진행되고 있다.

커다란 건물 사이로 조그마하게 남산타워가 보인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전 집에서 피로를 풀며 옛이야기와 오늘의 소감을 이야기하며 다음 출사를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