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설날 명절 고궁 둘러보기

산림교육전문가 2015. 2. 19. 07:49

설날 즐길거리로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인 4대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았다

 

결혼후 34년간 명절때 마다 부모님과 형제를 찾아 고향을 찾아 갔으나 올해부터는 내가 할아버지가 되어 자식들과 함께 우리집에서 명절을 지내다보니 귀성전쟁에서 벗어나  종묘와 고궁을 찾게 되었다.

 

집에서 18번 버스를 타고 양재에서 140번 버스를 갈아 타며 종로4가,종묘에서 하차하니 50여분만에 편하게 도착을 하였다.

 

그간 서울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찾은 종묘는 구정 전날이지만 한적하고 가끔씩 마주치는 여행객 뿐이다.

 

종묘는 세계 문화유산이지만 종묘에서 치르는 제사인 종묘 제례와 제례악도 무형 유산으로 등록되어 모두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 나가야 할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조상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머물 수 있는 곳(신주를 모시는 장소)으로  통로의 가운데는 조상들의 혼령들이 다니는 길로 존중하여 통행을 자제 하도록 하였다.

 

 

조경수로 향나무를 심고 연못을파 깨끗한 물이 유지되고 있으며 사진작가는 조상의혼을 카메라에 담는다.

 

오늘날의 정전은 신주를 모신 태실 19칸과 양쪽 2칸씩의 협실로 이루어져 있으나 처음 지어졌을 때 정전은 총 7칸 건물에 불과했단다.

젊은 남녀 한쌍이 조상를 알기위해 종묘를 찾았다 이들은 결혼해서 효를 알고 실천 할 요즘 보기드믄 이들로 정말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러나 외부에는 아직도 외로운 노인들이 많다. 즐거운 명절에 추운콘크리트 바닥에 홀로 앉아 외로움을 달래고 한편에서 장기를두며 세월의 흐름을 이어간다.

 

종묘에서 10여분을 걸으면 창경궁에 도달한다.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일제 시대때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가 복원사업으로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창경궁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수난을 겪은 궁으로 일제시대때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일본식 건물을 철거후 문정전 등을 복원하여 동물원은 과천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식물원만 남아 있다.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으나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대표한다.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숭문당에서 학문을 숭상하였던 영조가 태학생들을 접견하고 주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통명전과 양화당의 단청 그리고 처마선이 주변의 현대식 건물과 대조를 이룬다.

 

함인정은 인왕산 아래 인경궁에 있던것을 헐어 이곳에 옮겨와 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임금들이 편전으로 사용했다.

관람요금은 종묘-1,000원, 창경궁-1,000원, 창덕궁-3,000원, 후원(비원)5,000원으로 입장때 마다 지불하여야 하나  4대궁및 종묘 통합 관람권은 10,000원이다. 설날 명절엔 후원을 제외하고 무료로 개방 한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인정(仁政)은어진정치라는 뜻이며 왕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결혼식, 세자책봉식 그리고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 때의 중요한 건물이다.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다른 궁이지만 예전에는 두 궁을 가르는 담이 없었으며 창경궁이 창덕궁의 부속건물처럼 이용되어 두 궁을 합쳐동궐(東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궁궐로이궁으로 지어졌다 이궁이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을 말한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하여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으로 숙장문을 통과 하면 내전으로 갈 수 있다.

 

낙선제는 상중()에 있는 왕후들이 소복() 차림으로 기거하던 곳이며 1963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친왕() 이은()이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상중에 왕후들이 기거하던 곳이라 하여 단청()도 하지 않았다.

수강제는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가 1989년 7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거처했던 곳이며 장례식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계단식 화단

조선의 왕들 중에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한 왕이 많았으며 왕들이 머물며 나라를 다스리면서 창덕궁은 자연스럽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귀룽나무 하단에 나타난 정체 불명의 형상이 특이하다.

감나무

반송

소나무

금천교주변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 뒤로 인정전이 보인다.

 

은행나무 보호수 뒷편으로 보이는 현대건설 빌딩은 창덕궁이 많은 조선의 역사를 간직하듯 내가 근무 하였던 현대그룹의 상징인 저빌딩도 은퇴한 나의 인생여정에 많은 의미를 간직 하고 있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나  1609년 다시지은 것으로 궁궐의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