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추억으로
초등학교 시절 같은동네에 살던 친구들이 이제 이순이 되어 그동안 보고 싶어도 잘 만나지도 못하고 하였으나
이제 나이를 들어 어릴적 함께 뛰어돌던 추억이 어린 고향을 찾아 옛날을 서로 기억하며 산과 들을 걸어 보았다
지금은 지명 이름도 지워져 없을 듯한데 내가 가장 기억이 남는 여수고개
옛날 어릴적 큰 누님과 편물을 함께 하던분이 고개 넘어 반곡리에 게셔서 자주 심부름으로 넘던 고개길이다
이고개에는 동네에서 힘쓰는 선배들이 놀고 있다 꼬마들이 지나면 불러서 겁을 주며 물건도 빼앗고 하여 정말 가기 싫었으나 심부름이라 거역 할 수가 없어 겁을 많이 먹고 넘던 길이다.
고개 정상에는 큰 나무가 있고 거기에는 성황당 같은 돌무덤도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갈참나무 잎으로 덮여진 길과 제법 수령이 있을법한 참나무가 있었다.
함께 동네에서 놀면서 싸우기도하고 서로 의지하며 자란 머시매 네명과 지지배 둘이서 옛날 어릴적 겨울날 한이불에서 놀았던일과 내기억에 사라져간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걷는 모습이 우리의 나이와 비슷하게 마치 저녁노을 인생을 보듯한 뒷 모습이다
양지 바른 곳에 물을 가둔 큰 연못에는 청둥오리가 저희들끼리 고기잡이 놀이를 하며 놀고 있고
우수가 지난날이라 농부는 동면에서 깨어 봄철 일을 준비 하고 있는 듯하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이길을 통해 십여리를 걸어서 중학교 통학하던길 이제는 주소 표기방법도 달라져 황산벌길이 되었다.
명암리에 있는 젖소농장은 많은 소들이 있어 길을 지날때 냄새가 많았고 위생관리가 안되어 우천시에는 축사에서 나오는
오염수로 하천과 탑정리 저수지가 오염될 것이데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양파 재배밭이 있어 봄을 알리고 있으나 주변에 있는 논에는 양파가 버려져 있어 농부의 시름이 많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네 우물은 동네 아낙들의 사랑방 역활을 하던곳으로 빨래도 하고 물도 길어 가던곳이데 이제 오염이 되었고 상수도 시설이 잘 되어있어 폐허가 되어가고 있고 우물가의 감나무와 향나무가 옛날의 번성하던 시절을 보여주고 있다.
경노회관의 스피커가 눈에 뛰고 마을 시골버스의 정류장 역활을 하는곳에는 운동기구가 있어 버스를 기다리면서 몸 관리를 할수 있도록하여 동네어른 들의 건강 관리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
우리(새뜸)동네에는 대나무가 없어 대나무를 구하기 위하여 이웃동네집(수정리) 뒷들에 있는 대나무를 주인 몰래 베어 가다 주인에게 들켰으나 대나무를 가지고 도망가고 주인이 끝까지 쫒아오던 기억이 생생하고 대나무를 낫으로 베어난 자리는 매우 강하고 뾰족한데 그곳에 내다리 앞정강이가 깊이 찔려 지금도 왼쪽 다리 정강이에 흉터가 있다.
저 멀리 옛날 학교 등교길로 꼬마녀석들이 무어라 재잘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듯 하다.
1467년 지어진 양천 허씨정려와 그옆에있는 고목이 500여년의 세월 흐름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남편의 죽음으로 시댁의 개가권유를 마다하고 어린17세에 홀로 자식을 잘 키워 그후손들이 조선시대의 대학자가
많이 배출 되었다.
논산 탑정리 저수지 5~6월 모내기철이되면 논산평야에 물을 공급하여 물이 줄어들면 얕어진 웅덩이에서 3중망으로 고기를
잡고 조개웅덩이에서 조개 잡이하던 곳이다.
물속에서 놀다 집으로 올때엔 배가 고파 들역에 있는 오디나 산딸기등 먹을 수 있는것은 다 먹어가며 집으로 가던 옛날과 함께하던 동네 형들을 기억하면서 이제 칠순이 되어가는 형들 생각이 간절하다.
어릴적 매운탕이 그리워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운영하는집 생물을 찾아 빠가살이등이 들어간 잡어 매운탕과 붕어찜을 시켜 먹는데 한 친구녀석이 목에 붕어 까시가 걸려 고생하다 서울집근처 병원 응급실 가기로 하고 병원에 도착하니 괜챤다 하여 다행이라 하기도 하였으나 즐거웠던 여정이 좀 망가져 여운을 남겼다,
요녀석들이 앞집과 옆집에서 자라난 녀석들 같이한 지지배들은 빠지고 늙으신 아버님을 찾아뵈며 이녀석들을 이름을 이야기 해주면서 아시겠는냐고 여줘보니 혼미하신 가운데서도 알아보시며 손울 잡아 주시니 콧등이 찡하고 한편으로 친구녀석들이 아버님 살아 생전에 인사를 하여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